8·31 대책이 두 달만에 약발이 떨어지는 기색이 역력하고 시장의 반격이 곳곳에서 나타나자 정부에서 강공책을 천명한 이후 12월 들어 서울지역 첫 경매가 5일 동부, 남부, 북부지방법원 등에서 일제히 열렸다
▶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경매 5계 입찰법정. 오전 10시 쌀쌀한 수온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 둘 입찰참가자들이 입찰법정에 들어섰다.
이날 87건의 진행 물건 중 송파구 가락동 시영 아파트와 문정동 훼밀리 아파트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다. 8·31 대책이 흔들림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정부 당국의 메시지가 시장에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시험 무대로 향후 경매시장의 풍향을 일정부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8·31 부동산 안정대책이후 잔뜩 몸을 낮추었던 법원 경매 시장이 반격의 포문을 연 건 지난 11월이었다. 8·31 대책이 입법과정에서 후퇴 가능성을 보이고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 완화 언급에 따라 재건축 시장에서 발원한 바닥 근접론이 점차 경매시장으로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아파트의 경우 특별히 저 감정된 물건이 아니고서는 신건 낙찰이나 100%를 넘겨 낙찰되는 사례가 거의 없었으나 11월 들어서 일제히 상승세로 반전하였던 것이다.결국 두 달간 찔끔찔끔 떨어진 가격이 불과 한 달만에 원상회복돼 도루묵이 되었다.
8·31 대책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곧 바로 시장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지난 10월 31일 서울 동부지방법원 경매 3계였다.
10월 31일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한강현대 아파트 45평형이 5억 5000만원에서 한 차례 떨어진 4억 4000만원에 경매 나왔다. 8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최초감정가를 훌쩍 넘긴 5억 5719만원에 낙찰돼 101.3 %의 낙찰가율을 기록 입찰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동부지방법원을 진앙지로 하여 이후 서울지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12월 5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이 또 다시 반전의 도화선이 되었다.87건의 진행 물건 중 30건이 낙찰된 5일 가락시영 아파트(13평형)에는 전체 참가자(114명)의 21 %인 24명이 몰렸다.
최저 매각가 3억 2000만원에서 경합을 벌여 전 유찰가(4억원)을 뛰어 넘은 4억 516만원에 낙찰돼 101.3 %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참가자수에 비해 낙찰가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인지 조심스러운 행보가 역력했다. 이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밑바닥 정서가 일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지난달만 해도 정부정책의 후퇴 가능성에 힘입어 강남지역 아파트가 일제히 반등세로 돌아섰으나 다시 정부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자 다시 숨고르기 행보를 보이고 있다.투자자의 조심스런 행보는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아파트 경매 사건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다.
올 초만 해도 수십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올림픽훼밀리 아파트에 이날은 단 1명만이 참여했던 것이다.32평형이 7억 8000만원에서 한 차례 떨어진 6억 2,400만원에 입찰에 부쳐졌으나 감정가의 85.3 %인 6억 6512만원에 낙찰됐다.
▶5일 서울 남부지방법원 2계. 양천구 목동에 있는 신시가지 1단지 아파트 35평형이 6억 2000만원에 경매 나왔다.14명이 참여해 7억 8766만원에 낙찰돼 127 %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이처럼 낙찰가율이 높았던 이유는 실수요자들이 가세해 낙찰가를 끌어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남부지법 4계에서 진행된 2단지 45평형에 23명이 열띤 경합을 벌여 최초감정가(8억 5000만원)의 131.6 %인 11억 1888만원에 낙찰돼 입찰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에 비하면 참가자는 약 40 %나 감소했고 낙찰가율도 뚝 떨어졌다.
5일 성남지원 1계. 분당구 정자동 상록마을 라이프 아파트 58평형이 8억원의 신건에 입찰에 부쳐졌다.단 3명이 참여해 8억 5200만원에 낙찰돼 106.5 %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지난 달 7일 성남지원 1계에서 진행된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 건영 아파트 58평형에는 5억 6,000만원의 첫 경매에 10명이 참여해 최초 감정가의 120.6 %인 6억 7515만원에 낙찰됐다.
요즘 경매 시장은 지난달과 몇 가지 점에서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하나는 반짝 기승을 부렸던 고가 낙찰의 퇴조 움직임이 뚜렷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참여자의 감소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5일 서울 동부지방법원 5계에서는 30건의 낙찰 물건 중 16건이 단독 응찰 물건이었고 6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3계에서는 24건의 낙찰 물건 중 무려 15건이 나홀로 참여 물건이었다. 점유률 62.5 %.
부동산 시장에 안개가 다시 자욱하게 끼자 경매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강남, 송파, 목동, 여의도 등 입지조건이 빼어난 블루칩 지역은 실수요자와 투자수요가 서로 엉키면서 낙찰가가 일정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주로 투자 수요에 기대는 지역은 최근 시장 분위기를 반영한 듯 진성 참여자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향후를 도모하려는 아이 쇼핑 참여자만 느는 것 같다.
특히 6일 중앙지법은 전체 참가자가 57명(입찰 경쟁률 2.38명)에 불과해 개찰 개시 45분만인 12시 10분에 경매 절차가 모두 종결되었다. 이는 투자자들을 법정으로 끌어 들일만한 양질의 물건이 품귀를 빚으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아마 필자가 지금까지 입찰에 참여한 이래 최단 시간으로 기억된다.
6일 최고 경쟁률 물건은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개나리 아파트 57평형으로 12억원에서 한 차례 떨어진 9억 6000만원에 10명이 참여해 감정가의 101.6 %인 12억 1870만원에 팔려갔다.
그밖에 8·31 대책이후 아파트를 밀어내고 경매시장의 황제주로 군림한 연립·다세대의 인기는 꾸준하나 열기는 이전만 못한 편이다.
뉴타운과 재개발의 호재를 등에 업고 ‘묻지마 경매’의 진앙지 역할을 하기도 했던 이들 물건에 개발 거품이 빠지면서 조정국면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는 장위동 지역이 가장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9월을 전후에 고가에 팔려나간 장위동 지역 물건 중에서 잔금 납부를 포기한 물건이 연어가 회귀하듯 속속 시장에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7일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30평형 다세대 주택이 1억 5000만원에서 2회 유찰 돼 9600만원에 경매 나왔다.
이 날 21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전전(前前) 유찰가에 근접한 1억 4860만원에 낙찰돼 99.1 %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낙찰자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아 재매각에 부쳐진 6일에는 불과 5명이 참여해 1억 1678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77.9 %.
▶지난 9월 28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4계.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연립주택에 무려 95명이 참여해 올 들어 서울지역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순간 5500만원의 4배가 넘는 2억 3820만원 짜리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물건 역시 낙찰자가 잔금 납부를 미루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아파트와 함께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왔던 토지시장은 올 겨울이 유난히 더 추울 것 같다. 8·31 대책의 집중 포화를 맞은 토지시장이 좀처럼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시장은 행정복합도시와 공공기관 이전 등 개발 재료지역에는 투자자 몰림이 나타나나 여타 지역에는 투자자 외면에 따른 ‘선택과 집중’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양극화, 차별화, 선별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